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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가 코리언 레전드가 돼 돌아왔다. 사진은 1998년 제13회 방콕 아시안경기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고 환호하는 장면. |
▶ '봉달이' 이봉주 "황영조와 라이벌? 내가 밀려" ⓛ편
이봉주의 마라톤 인생은 육상선수를 시작한 지 4년째인 스무 살에 시작됐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앞두고 도쿄 하프마라톤에서 한국 최고기록을 세우는 등 쾌조의 컨디션을 자랑했다. 하지만 순항하던 그의 마라톤 인생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하프 마라톤 이후 최고의 컨디션이었는데 욕심이 앞섰는지 올림픽 출전권이 걸려있는 동아 국제 마라톤 대회를 한 달 앞두고 무릎을 다쳤죠. 경기 중 무릎에 통증이 와 레이스를 포기하면서 6개월 넘게 슬럼프에 빠졌어요." 올림픽의 꽃인 마라톤 국가대표의 꿈이 멀어지자 거침없는 상승세를 보인 이봉주도 무력감에 빠졌다. 마흔 번 풀코스 완주의 삶 속에서 최저 기록이었던 2시간 19분과 20분대를 3차례나 겪었던 시기도 1992년 10월부터 1993년 3월까지였다.
- 1993년 호놀룰루 마라톤대회를 우승하면서 슬럼프를 탈출하게 됐는데요.
대학교 4학년 때였는데 반전을 이뤄낸 거죠. 그해 코오롱스포츠 육상 팀(99년 해체)에 입단할 수 있었던 계기도 됐고요. 호놀룰루에 계신 교민들께서 많이 우셨어요. 그때까지 한국 선수 중 우승한 선수가 없었고, 어렵게 살아오신 교민들이 제가 우승하는 모습을 보고 감격하셔서 우셨죠. (그러고 보니 본인은 대회 때마다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마음은 짠한데 눈물은 없어요. 강하게 보이고 싶어서요.(웃음)
- 고인이 되신 정봉수 당시 감독이 이끈 코오롱에 입단하셨어요. 입단 3년 째인 1996년 3월 동아 국제마라톤 대회에서 2시간8분26초(2위)로 올림픽 국가대표에 선발됐죠. 애틀랜타 올림픽은 아쉽지만 황영조에 이은 또 하나의 발굴로 평가됐는데요.
주변에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죠. 전 올림픽 메달의 꿈도 있었고, 솔직히 군 문제에 고민이 워낙 많았던 지라 간절함이 더 있었어요. 요즘 운동선수들도 군 문제로 고민이 많잖아요? 올림픽 메달이 더 간절하기도 하고요. 저 역시 선수 생활을 하는 데 (군 문제로) 걸림돌이 있었어요. 은메달을 따서 두 배로 기뻤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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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봉주 손기정 기념재단 이사. / 문병희 기자 |
- 금메달을 딴 조시아 투그와니(남아공)에게 3초 차이로 아쉽게 졌어요. 당시 투그와니 선수의 레이스 폼을 따라하는 팬들도 많았었는데요.
맞아요. 키도 작았는데 아기자기하게 뛰었어요.(웃음) 솔직히 경기 전에 신경 쓰지 않았죠. 주목 받던 선수도 아니었고요. 선두로 뛰어가 길래 '조금 지나면 떨어지겠지'라고 생각했죠. 어느 순간 이게 아니다 싶은 거예요.(웃음) 추격을 시작했는데, 마지막 메인 스타디움에서 100m만 더 길었다면 잡을 수 있었는데 아쉬웠죠. (마지막에 손 흔들며 골인했는데) 우리 나라는 은메달을 따도 고개 숙이는 선수들이 많잖아요?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 4개월 뒤 후쿠오카 마라톤에서 투그와니와 다시 대결 했는데, 통쾌하게 우승을 하면서 설욕을 했지요.
올림픽에서 졌기 때문에 설욕하고 싶었어요. 제 신조가 한 번 졌던 선수에겐 두 번 다시 지지 않는다는 게 있어요. 그만큼 비장했죠. 투그와니 선수가 올림픽 후 술도 좀 마시고 운동을 게을리 했는지 정상 컨디션이 아니더라고요. 중간에 기권을 했어요. 어쨌든 우승을 하면서 설욕할 수 있었죠. 2년 뒤 방콕 아시아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상승세를 탔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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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년 마라톤 인생 이야기를 가감없이 들려준 이봉주. |
하지만 이봉주에게 또 다시 시련에 닥쳐왔다. 후배 사랑이 남달랐던 그는 1999년 후배 김이용이 로테르담 마라톤에서 역대 2위 기록(2시간7분49초)을 차지했지만 코오롱이 부당한 처우를 했다며 임상규 감독, 오인환 코치와 함께 팀을 이탈했다. 충남 보령의 한 여관방에서 눈물 밥을 먹으며 지냈다. 하지만 부활을 외쳐대며 굳은 의지로 다시 땀방울을 흘렸다. 그리고 2000년 도쿄 마라톤에서 2시간7분20초(2위)로 한국 신기록을 세운다. "힘든 상황 속에서 결실을 맛 본 것이라 오인환 당시 코치님과 껴안고 엄청 울었어요."
- 부활에 성공한 뒤 2000년 6월 삼성전자 육상 창단 멤버로 들어갔죠. 그런데 생애 두 번째 올림픽이었던 시드니 대회에서 예기치 않은 일이 생겼어요.
정말 속상했죠. 4~5명이 뛰는데 앞 선수들끼리 발에 걸려 넘어지면서 저도 덩달아 넘어졌어요. 마라톤이라는 운동이 운도 작용하지만 넘어져서 경기를 망친 것은 처음이었죠. (일부러 몸싸움을 하기도 하나) 조금 있긴 해요. 뒤에서 뛰다 보면 다리를 걸 때도 있고 신경전을 벌이죠. 페이스를 한 번에 잃어버리면 정말 다시 뛰기 싫고 힘들거든요.
- 다행히 그해 역사와 전통이 있는 보스턴 마라톤 우승으로 다시 부활했어요.
보스턴 마라톤 대회를 준비하던 중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상을 치르고 곧바로 대회를 나가게 됐는데, 몸 상태가 좋지 않았죠. 컨디션이 완벽해도 될까 말까한 것인데….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선물을 주신 것 같아요. 기록도 2시간9분43초로 좋았고요. (이후 에드먼턴 대회 기권은 어떻게 된 건가) 하하. 창피한 결과인데 욕심이 많았던 거죠. 한국 선수 최초로 세계 선수권을 제패하고 싶었는데 무리하게 준비하다 근육통으로 도중 기권했어요.
- 2002년 결혼을 하신 뒤 첫 대회였던 부산 아시아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땄어요. 내조의 힘이 컸나요?
결혼의 힘이죠.(웃음) 아내가 내조를 참 잘 해줬어요. (앞서 말했지만 황 감독의 소개로 만났는데 어떤 매력에 반하셨나) 첫 인상이 좋았어요. 1994년도에 만났는데 선수 생활 내내 운동하는 데 있어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무척 애쓰더라고요. 숙소 생활도 했고 먹고, 자는 것에 예민한 종목이다 보니 연애할 때 재미없었겠죠. 운동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도 많았기에 미안했어요.
- 8년 넘게 연애를 하셨는데 믿고 기다리신 아내 분이 대단해보이네요.
중간에 헤어질 위기도 몇 차례 있었죠. 그런데 잘 이해해주고 지혜롭게 이겨내 준 것 같아요. (아내를 위한 이벤트는 없었나) 생일 때였는데 풍선을 불어 차 트렁크에 가득 넣고 꽃다발과 함께 선물한 적이 있었죠.(웃음) 아, 그리고 제가 손으로 직접 꽃을 접어서 바구니에 넣어 주기도 했어요. (섬세한 모습에 반하셨나) 아마 그런 것 같아요. 사실 섬세한 성격은 아닌데 그만큼 사랑했죠.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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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002년 김미순(왼쪽)씨와 결혼한 이봉주. 결혼식 이 열린 잠실종합경기장에서 만세를 외치고 있다. |
- 2007년 서울 국제 마라톤 우승(2시간8분4초)으로 선수 생활을 은퇴하셨어요. 아내가 마지막으로 해준 말씀은 무엇이었나요?
아쉽지만 정말 고생했다고요. 편안하게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갖고 행복하게 살자고 했어요. (은퇴식 때 드디어 눈물을 보이더라) 정말 많이 울었죠. 다른 선수들 은퇴할 때 '왜 저렇게 많이 울지'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상황에선 울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요. 선수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데, 한 길만 보고 살았고 편안하게 내려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니 더 울컥했죠.
- 20년 마라톤 역사에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과 아쉬웠던 순간을 꼽자면요?
잊을 수 없는 순간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이죠. 3초 차이로 우승을 놓쳤지만 제 꿈이 태극마크를 달고 꿈의 무대인 올림픽에 서는 것이었는데 그게 최초로 이뤄진 대회였고 결과도 좋았잖아요. 모든 사람들에게 저를 기억하게 할 수 있게 했고요. 반면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은 어머니까지 오셔서 응원을 해주셨는데 불운한 사고로 성적이 좋지 않아 속상했죠. 원래 어머니가 대회에 잘 따라오시지 않으셨거든요? 그런데 하필이면….
- 앞으로 제2의 꿈이 있다면요?
한국 마라톤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해야죠. 지금 마라톤이 침체기라고 볼 수 있는데 누군가 나서야죠. 그런 역할을 주어질 때 제대로 해야 할 것 같아요. 선수들도 부족하잖아요? (조언을 할 게 있다면) 지도자도 마찬가지지만, 선수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해요. 저희 세대하고 마인드 자체가 차이가 나죠. 눈치만 보면서 시키는 대로 하고 자기 발전을 위한 노력이 많이 부족해진 것 같아요. 본인 스스로의 의지를 키울 수 있는 동기부여가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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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빛 지도자를 꿈꾸는 이봉주의 제2의 마라톤 전성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