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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10.22 10:03 / 수정: 2009.10.22 11:42
[중소강열전] '젠한국' 김성수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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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장실 한켠 테이블 위. 찻잔이 예사롭지가 않다. 전체적으로 소박한 회장실 분위기 탓인지 유독 찻잔이 돋보인다. 순백의 배경 위로 만개한 연분홍 꽃들이 은은하게 찾잔을 감싸고 있다. 남다른 찻잔이 놓인 곳은 연간 매출 550억원을 돌파하며 한국도자기. 행남자기 등과 함께 국내 도자기업계 ‘빅3’로 올라선 젠한국 김성수(61) 회장의 집무실이다. 한국도자기에서 10여년간 대표이사를 역임한 뒤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지 4년여 만에 국내 도자기업계 대표 업체로 올라선 젠한국 김 회장의 시작이 처음부터 탄탄대로였던 것은 아니다.

    ◇ 가업이 이끈 엔지니어의 길

    김성수 회장은 국내 도자기업계의 산증인이다. 특히 기술 분야의 역사이기도 하다. 동양 최초로 본차이나를 개발한 데 이어 초강자기인 ‘슈퍼스트롱’을 개발하면서 국내 도자기산업의 세계 진출을 이끌어온 1세대라는 평가를 받는다.

    김 회장은 한국도자기 창업자인 고 김종호 회장의 4남이다. 그렇다고 선대에서 이룬 가업을 물려받아 손쉽게 시작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1973년 김 회장이 연구실장로 입사한 한국도자기는 투박한 질그릇을 생산하던 지방의 한 중소기업에 불과했다.

    김 회장은 “선대 시절의 부채는 상당 부분 해소됐지만 재래식 가마를 사용하는 등 오늘날 국내 도자기 기술과 비교하면 기술력과 인력 등은 아직 턱없이 부족했던 기업이었죠”라고 회상했다.

    김 회장이 대학에서 경제학과 행정학을 전공한 형들과 달리 화학공학과 박사 학위를 받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도자기 기술을 통해 도자기를 만드는 가업에 보탬이 되기 위해서다. 그는 국립공업연구소 연구원 생활을 접고 한국도자기 연구실장을 맡으면서 도자기와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었다.

    ◇ 세계 최고의 본차이나 초고속 개발

    기회는 엉뚱한 곳에서 찾아왔다. 영국 황실에서 사용하는 고급 도자기의 대명사인 본차이나 개발에 착수하면서 한국도자기는 성장의 기회를 잡았다. 1973년 본차이나 개발에 뛰어든 건 당시 영부인인 육영수 여사가 본차이나 제품을 만들어볼 것을 주문했기 때문이다. 골회(소뼈를 고온에서 구워 가루를 낸 것)를 이용해 만드는 본차이나는 투광성이나 강도. 보온성이 탁월한 세계 최고의 도자기 기술이다. 당시 한국도자기 연구실장이었던 김 회장이 연구개발을 진두지휘했다.

    “정말 막막했죠. 국내에서는 본차이나를 만드는 성분조차 쉽게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소뼈를 어떻게 몇 도에 굽는지 점토와의 비율은 얼만지 모두 직접 실험해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설득 끝에 영국의 한 회사로부터 기술 이전을 받고도 본차이나 기술을 완성하는 데 7년이 걸렸다. 결코 오랜 시간이 아니었다. 실제로 도자기 관련 기술력이 앞서 있었던 일본은 본차이나 기술을 완성하는데 무려 30년이 걸렸다. 김 회장은 이어 1980년대 초반 가격은 저렴하고 품질은 본차이나에 버금가는 ‘슈퍼스트롱’을 개발하면서 세계적인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게 된다.

    ◇ 시장활성화를 위한 독립 선언

    2005년 김 회장은 독립을 선언했다. 한국도자기판매㈜를 한국도자기에서 분리해 이를 기반으로 인도네시아 공장을 인수해 젠한국을 출범시켰다. 동종업계 진출을 두고 오해를 받기 쉬웠다. 그러나 김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아직도 제가 대주주로 있는 한국도자기와 국내·외 시장에서 직접적인 경쟁 관계에 놓일 수도 있지만 경쟁을 통해 전체 시장을 키울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김 회장은 한달에 열흘 이상을 인도네시아 현지 공장에서 보낸다. 젠한국의 핵심 경쟁력은 그곳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공장은 직원만 1500명. 생산능력은 월간 170만개에 달한다. 150명에 달하는 연구개발 인력도 갖췄다. 생산능력과 연구개발 인력만 본다면 세계 유수의 도자기 업체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세계 유명 도자기업체들의 주문이 끊이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기술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김의 의지와 한발 앞선 투자가 빛을 발하는 대목이다.

    “공장이 설립된지 18년이 되면서 공장 직원의 숙련도가 높아졌습니다. 보수나 복지 등에도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죠. 노동집약적이고 기술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직원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주문량을 맞추기 위해 생산라인을 증설했습니다.”

    평소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의 구분이 없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현장을 누비며 자연스럽게 체득한 결론이다. 이는 공장을 찾을 때면 푸른 작업복부터 찾는 김 회장의 모습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일본 업체 제치고 해외에서 연이어 성공

    젠한국이 생산한 제품은 이미 세계 50여개국에 판매되고 있다.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을 통해 세계 유수의 도자기 업체인 레녹스. 미카사. 빌레르 앤 보흐 등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젠한국의 매출 중 70%가 이에 해당한다. 기술력을 인정받지 않고는 어려운 일이다.

    이와 함께 젠한국은 자체 브랜드인 ‘젠’ 등도 중국. 싱가포르 등 세계 20개국 이상에서 판매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내 판매 1위 업체인 일본의 노리다케를 제치고 아랍에미리트 해외 공관의 공식 식기로 채택돼 주목받기도 했다.

    젠한국의 지난해 매출은 550억원. 환율효과를 톡톡히 봤다. 지난해 매출 실적만 보자면 국내 경쟁사의 매출을 웃돈다. 젠한국은 올해 600억원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 젠앤락 등 생활 용기 분야로 사업 확대

    기술 개발을 기반으로 해외 생산기지를 통해 사업을 확장해온 젠한국은 다시 한 번 예상외의 선택을 한다. 국내 시장 공략을 강화키로 한 것.

    젠한국은 본격적으로 국내에 진출한 지 1~2년만인 현재 롯데백화점 본점 등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에 성공적으로 입점하고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밀폐용기 전문업체인 락앤락과 기술 제휴를 통해 도자기 밀폐용기 사업에 진출. 홈쇼핑 등에서 대박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도자기는 생산 과정에 변형이 오기 때문에 기술력이 확보되지 않으면 밀폐용기 등을 생산할 수 없습니다. 변형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대량 생산이 가능한 젠한국의 기술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젠한국은 향후 조리용 도자기 제품 등으로 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내년 상반기 중으로 충청북도 오창단지에 공장을 완공할 예정이다. 특히 오창공장에서는 반제품으로 국내에 수입된 제품을 후반 디자인 작업을 담당하고 물류센터 등으로 활용하게 되면서 한층 높은 품질의 제품을 제공할 수 있게 돼 주목을 받고 있다.

    ♣ '한식 세계화'는 주방식기의 세계화부터?

    ‘한식의 세계화’는 주방식기의 세계화부터.

    한식의 세계화를 두고 갖가지 아이디어가 쏟아지는 가운데 젠한국 김성수 회장은 전공(?)을 살려 ‘식기의 세계화’라는 대안을 제시했다. 한식의 보관과 조리 등에 도자기 관련 기술을 활용해야 한식의 세계화를 앞당길 수 있다는 것.

    그는 “현재의 식기만으로 한식의 세계화를 이끌어내기 어렵다”면서 “한식이 세계적인 식품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식기의 개발이 필수”라고 말했다.

    특히 김 회장은 다른 재질의 용기를 사용했을 때보다 도자기와 같은 세라믹 제품을 활용했을 때 신선도·항균성 등이 탁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같은 그의 지론은 도자기를 소재로 이용해 냄비와 프라이팬 분야로 사업을 다각화하는 것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실제로 한식에 두루 쓰이는 도자기 냄비는 전자레인지와 오븐은 물론 가스레인지에 사용할 수 있다. 조리 기구로 인한 제약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김성수 회장의 유별한 청주 사랑

    김성수 젠한국 회장은 충청북도 청주가 고향이다. 이 때문인지 남다른 청주 사랑이 눈길을 끌고 있다.

    현재 자택은 청주시 상당구. 젠한국의 본사도 청주에 위치해 있다. 연세대학교에서 화학공학(공업재료)을 전공해 석사 학위를 받고. 박사 학위는 고향의 충북대학교에서 받았다. 78년부터 충북대 화학공학과에 출강을 하기도 했다.

    고향 사랑이 남달라 이색 경력도 눈에 띈다. 한평생 경영자와 엔지니어로 살아온 김 회장을 보면 쉽게 연상하기 힘든 이력들이다. 그는1984년부터 현재까지 청주지방검찰청 범죄예방위원회 운영위원을 맡고 있다. 또 92년부터는 청주지방법원 민사 및 가사 조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94년부터 시작한 충청북도 선거관리위원은 12년 동안 지냈다. 이밖에도 대한적십자사 충북지사 부회장을 지낸 데 이어 현재 충북대학교병원 이사 등을 맡고 있다. 이같은 활동을 인정을 받아 97년 충청북도 도민대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경력이 화려하다는 말에 김 회장은 웃으며 “단순히 고향인 지역 사회를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 순간 만큼은 회장님이 아닌. 어디선가 한번쯤 봤을 법한 우직하고 정겨운 ‘충청도 사람’의 모습이었다.

    임홍규기자 hong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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